문태성(전 강원도 정무특보) 정치학박사

▲ 문태성(전 강원도 정무특보) 정치학박사.
글=문태성(전 강원도 정무특보) 정치학박사

-고 김옥련 여사(박영록 전 지사 부인) 발인에 부쳐-

얼마나 답답했을까?
박영록 전 의원이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게 국회의원 뱃지와 재산을 강탈 당하고 종국에3평 계단 땅 위에 나 앉은 2평 컨테이너의 삶이 어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세 아들 중 큰아들은 군부에 박 전 지사와 같이 끌려가 고문 당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되었고, 둘째는 교통사고로, 막내는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며 행한 생자살을 본부모 어미의 마음이 얼마나 쓰렸을까?

얼마나 한 많은 37년 세월이었으랴?
민주화된 대한민국 광명 세상에 아직도 밝은 빛을 보지 못하는 박영록 전 도지사를 보며 이엉터리 같은 세상, 이 못된 세상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며 얼마나 속울음을 던지셨을까?

좁은 단칸 컨테이너 깡통방에서 폐암이 걸린지도 모르고 살다가 고려대병원에 가서야 진단을 받고 수술도 못하고 퇴원 후, 2년 여를 원주요양병원에서 투병하기까지 박영록 전 지사는 병원에서 하루 하루 죽어가는 아내를 속절없이 지켜주었다. 그곳 침상 바닥에서 같이 자고  생활하며 서울 국회를 매일 오르내렸건만.

작년 3월 국회에서 청원 의결로 정부에다 박영록 과거사에 대해 과거사진상위원회가 2009년 5월 결정권고한대로 박영록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구제 대책을 강구하라는 문서를 권고일 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처사를 통탄하며 시원한 사과문 한 장 받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김옥련 여사는 눈을 감았다.

후배 도지사, 후배 국회의원들은 귀를 닫고 살던가?
제아무리 매정한 세상이라도 너무 하지 않은가?
내 부모라면, 내 형제라면 이대로 내깔려 둘 건가?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를 못 본듯이 지나쳐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가? 이것이 정치인가? 무관심 죄악 아닌가?
▲ 1970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기념탑의 손기정 국적을 고친 후 박영록 부부. (사진=문태성 정치학박사 제공)
1970년 부군을 따라 독일로 날아가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에 새겨진 메모리얼 기념탑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국적 'JAPAN'을 'KOREA'로 사다리를 타고 밤새 바꾼 후 새벽에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환하게 찍는 한복 차림의 김옥련 여사! 귀국 시 김포공항에 내려 마중 나온 3천 군중의 환호에 손기정도 나와 맞아주었던 당신은 또한 분의 진정한 애국자였다.

애국자는 그렇게 돌아갔다.
한 송이 옥구슬꽃은 그렇게 갔다.

이제 혼자 달랑 남은 박영록 전 지사 어느새 96세이다.

발인날 아침 “나도 곧 따라갈란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며 부쩍 수척해진 모습은 약관 39세의나이에 강원도를 이끌었고, 4선 국회의원으로서 국회를 호령하던 분이 아니다. 세월 앞에 이길 수 없다던가.

19살 때 마을의 인흥초등학교에 부임 와서 만난 여교사였던 김 여사를 영구차로 회상하며94세에 먼저 보내고, 이제 얼마나 더 사실까?무슨 영화를 더 기다리시겠는가? 이 땅에 대대로 나라를 망친 친일파청산과 부패된 부정부패가 깨끗하게 사라져 선진조국 내 조국 대한민국이 되는 날, 그 날에 필시 다시 활짝 웃으리라.

박영록 전 지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영화 '애국자'로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필시 후대에 사실을 전하리라.
그리고 영원한 민족의 거울이 되어 돌아 오시리라.

흑암과 고통의 늪을 떨치고 이제 넓고 포근한 울산바위가 병풍을 두른 고향땅 설악의 품에서 영면하시길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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