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남 강원지방병무청 행정인턴

▲ 정병남 강원지방병무청 행정인턴
“병남씨! 게시판 자료 좀 검토해줘요. 이 자료 포토샵 처리 좀 부탁해요. 신세대 취향에 맞는 홍보방안에 대해서 생각 좀 해봐줄래요. 우린 머리가 굳어서...” 오늘도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직원들과 함께 활기찬 인턴생활이 시작된다.

이태백(20대 태백이 백수), 청년실신(청년실업자ㆍ청년신용불량자), 88만원세대, 인턴세대 등의 유행어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을 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지원한 것이 강원지방병무청 행정인턴이었다.

졸업은 했지만 나를 원하는 곳도, 내가 갈 곳도 없다는 무기력감, 소외감, 열등감은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점차 줄어들게 했고,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주변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기 까지 했다.

‘행정인턴은 복사, 청소, 심부름 등 허드레 일만해서 지원자가 많지 않다던데...차라리 그 시간에 취업공부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직장체험을 통해 나의 적성을 발견하고 능력을 테스트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서를 내게 되었다.

배치된 곳은 운영지원과 홍보계로 평소 홍보분야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홍보노하우도 배우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경험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무척 기뻤다. 행정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놀란 것은 강원청 직원들의 민원인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른 행정기관을 방문하면 민원인을 행정의 수혜자로 인식하여 민원인 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병무청 직원들에게 민원인은 월급을 주는 사장 내지는 직원들의 존재이유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아침은 각과 사무실에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친절 인사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민원인이 방문했을 때는 차나 쵸코파이 등을 내놓으며 앉아서 상담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장실에는 민원인용 칫솔까지 준비해놓고 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고객만족도 3년 연속 최우수 지방청이라는 명성과 명예가 정말 헛이야기가 아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평범한 전광판을 100% 활용하는 노력이다. 병무청에 설치된 전광판이라고 병무행정만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군의 축제나 생활정보 등이 골고루 게시되고 있다. 역으로 다른 지역의 전광판에서도 병무행정 정보가 송출되고 있다하니, 전광판 한개로 20여개의 전광판을 얻는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녹색성장과 그리 연관이 없어 보이는 병무청에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매주 월요일은 채식을 하고, 에너지 지킴이 제도를 운영하여 안쓰는 전등, 컴퓨터를 소등하고, 자전거로 출퇴근 모습도 작지만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동안 공무원에 대한 생각하면 ‘영혼이 없는 사람’ ‘철밥통’ ‘탁상행정’ ‘선례답습’ ‘신의 직업’이란 생각을 먼저 했었지만 인턴생활을 통해 직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서비스 방안을 찾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으면서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바로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 더 나은 복지, 더 많은 정보로 돌아간다는 게 참 좋다.

요즘 공무원 되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주말에는 서점에 들러 공무원 수험서나 사봐야겠다. 내안에 숨겨진 열정을 발견하게 하고, 뚜렷한 목표를 갖게 해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행정인턴!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면, 나의 값진 행정인턴생활이 공무원시험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반 사기업의 경우 인턴사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도 하지만 행정인턴의 경우 사기업 취직시나 공무원 시험시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다. 행정인턴생활이 일회성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취업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행정인턴경력에 가점을 부여해주어 인턴생활과 취업이 실질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래야 행정인턴들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높여 ‘100만원짜리 고급알바’, ‘예산낭비’, ‘전시행정’이라는 부작용을 극복하고, 청년실업해소에 도움이 되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글=정병남 강원지방병무청 행정인턴)

저작권자 © 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