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태백소방서 김주혁 지방소방교

글=강원 태백소방서 김주혁 지방소방교

▲ 강원 태백소방서 김주혁 지방소방교.
‘에이 강풍예보.. 하루이틀도 아니고, 무슨일 있겠어?’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2016년 5월 3일 저녁부터 바람이 꽤나 예사롭지 않더니 밤이 깊어질수록 그 기세가 아주 매섭게까지 느껴졌다.

밤 10시를 좀 넘은 시간 스피커에서 첫 번째 구조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강풍에 주택 함석 지붕이 날아간 상태 출동하여 안전조치 바람’ 그 지령이 그날 밤 기나긴 출동의 시작이었다.

펌프차가 휘청휘청 할만큼 바람은 이미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용연동굴 안쪽 골짜기에 들어서고 얼마지 않아 구조현장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참담한 모습이었다.

함석지붕이 떨어져 길바닥에 엿가락처럼 내려않아 있었고 주인 아저씨 한 분이 지붕에 위태롭게 메달려 작업을 하고 있었다.

펌프차에서 내리는데 바람에 몸이 휘청였다. 골 안쪽이라 그런지 바람이 더 거세게 느껴졌다. 여지 껏 느껴본 가장 센 바람이었다. 헬멧 등 안전장비를 다시한번 더 질끈 고쳐 멨다.

우리는 구조대와 함께 각종 장비를 이용해 지붕을 뜯어내 안전한 곳으로 이동조치하고 주변에 위험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스래트판넬을 나를때는 바람이 한번 칠때마다 판넬과 몸이 같이 공중으로 들썩였다.

‘오늘, 큰일 나겠구나..이거 보통 바람이 아니구나’ 우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업에 임했고, 무사히 안전조치를 마칠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께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것을 당부드리고 우린 황급히 다음 출동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활동 중에도 계속해서 출동무전이 들어왔다. 한 곳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린 황급히 다음 구조현장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아파트 5층 베란다 유리창 파손 현장이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연세 많으신 할아버님 한분과 따님이 불안에 떨며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다행히 놀라시긴 했지만, 외상은 없어 보였다.

“살다살다..이런 바람은 처음이네..허 참..암튼 와줘서 고맙수” 할아버님이 우리를 보고서 마음이 좀 놓이시는 모습이셨다.

현재 시 전체가 강풍으로 이런저런 피해가 많으니 비단 이곳만 피해를 본 상황이 아님을 알려드리고 가족들을 최대한 안심시켰다.

그리고 가족들을 베란다와 먼 방쪽으로 대피시키고 현장안전조치를 시작했다. 낙하위험이 있는 바깥쪽 유리파편을 제거하고 방안쪽 유리면에는 가족들과 테이프 작업을 진행했다.

한 건물 밖 1층 쪽에는 통제선을 쳐서 안전공간을 확보, 낙하로 인한 2차 사고를 대비토록 했다.

관리사무소 측에서도 야간에 수시로 순찰을 해서 사고예방에 힘써주길 당부했다. 우린 별로 큰 도움이 못되어드린 것 같은데도 연신 고맙다는 할아버님을 뒤로하고 다음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고 있었다.

문화연립 앞에 도착했을 때는 눈을 의심했다. 초대형 천막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연립앞 주차장 차량 일부를 파손하고 연립 입구를 통째로 막아 통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 예상됐다.

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대원 전체는 천막 분해작업을 시작했다. 칼로 일일이 천막을 뜯어내고, 햄머 등 장비를 이용해서 철재구조물을 분해해 나갔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작업 중에도 바람이 한번 씩 강하게 불 때면 천막이 심하게 들썩여서 대원들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시간 여 작업 끝에 철제구조물 전부를 철거하고 통행 및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수선한 와중에 줄게 없다며, 아주머니 한분이 따뜻한 커피를 대원수에 맞게 타 내오셨다.
“소방관님들 너무 고마워요.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하세요” 감사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린 감사의 따뜻한 커피 한잔을 급히 마시고 애타게 우리의 도움을 기다릴 다음 현장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무전에서는 연신 출동가능 한 차량을 찾고 있었다. 그만큼 강풍피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바람이 이젠 좀 잦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또다시 도착한 다음현장 역시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연립아파트 지붕이 통째로 비틀어져서 떨어질 위기였다. 바람이 조금만 더 불어 지붕이 떨어지면 피해가 엄청 클 것 으로 보였다.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우린 사용가능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지붕 고정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로프를 이용해서 지붕을 고정시키고 와이어 철사를 이용해서 지붕 중간 중간을 지지 가능한 기둥에 묶어 단단히 고정을 해나갔다. 와이어 철사를 자르고, 감고, 묶어 고정하는 작업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임시적이나마 안전조치를 마칠 수 있었다.

어느덧 날은 환하게 밝아 있었다. 그 후로도 우린 몇건의 출동을 계속해서 진행해 나갔다. 대원들 모두 지치고 힘들었지만, 누구하나 불평없이 최선을 다해 현장활동에 임했다.

그렇게 우린 9건의 연이은 구조출동을 마치고서야 본서로 귀소할 수 있었고 비상소집된 대원들 덕분에 짧게나마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청천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것도 그때였다. 동료대원이 현장작업 중 강풍에 칼라 강판지붕이 낙하하면서 덮쳐 크게 다쳤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경미한 부상이길 바랬고 큰 일이 아니길 빌었다. 우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도 이어지는 현장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모진 바람이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

어느덧 바람은 잦아들었고, 악몽같은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우린 동료대원을 하늘로 떠나 보냈야 했다.

하늘도 무심했다. 우리의 간절한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믿고싶지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날의 악몽같은 강풍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강풍은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갔다.

저작권자 © 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