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관광수 역할

 직원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직장은 춘천, 예식장은 전라도 장흥. 약 500km 거리 . 지도를 보니 멀고도 멀다. 직원 6명을 태운 봉고차는 새벽부터 6시간을 달려 장흥에 도착했다.

 역시 남쪽은 여기보다 따뜻했다. 신랑의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는 맘껏 축하해 주고 식사장소로 자리를 이동했다. 나도 예식장을 여러군데 가봤지만 전라도에서는 처음이다. 살아있는 낙지를 넣은 불낙전골, 삼합, 간장 게장 등 식사메뉴도 예전과 다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신혼여행을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라도 들리고 가자고 한 곳이 장흥 옆,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 보성이었다. 갑자기 정한 계획이라 여직원들은 정장에 높은 구두 차림으로 다원에 들어갔다. 생각지 않은, 입구에 길게 늘어선 아름드리 삼나무를 보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삼나무 길을 따라 들어간 녹차밭도 정말 좋았다. 나트막한 능선을 뒤덮은 차밭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여 주었다.

 나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엄마와 같이 시외로 나간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가는 도중에 예전 우리 과수원을 보고가자고 하셨다. 내가 어릴 적 우리집은 작은 가게를 하였고, 평소 지나치다 싶으리 만큼 검소하고 부지런하신 엄마는 직접 과수원에서 키우신 귤을 가게에서 파셨다.

 엄마는 귤밭을 걸으시면서 옛날 얘기를 하시다가 죽 늘어선 키 큰 나무를 보시고는, 당신께서 심은 나무가 이렇게 컸다고 하시며 흐믓해 하셨다. 방품림으로 심은 삼나무였다.

 삼나무는 원래 외래종이다. 생존력이 강하고 생장도 빠른 일본의 대표적인 수종으로 일제시대 때 제주에 많이 심어졌다. 해방 이후 수십 여 년을 줄곧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특히 60년대 이후 귤농사가 본격화되면서 방풍림으로 많이 심어 졌다.

 이제는 토착화하여 제주도민들에게 친숙한 이 나무는 ‘숙대낭’이라고 불린다.(나무=낭)육지에서 100km이상 떨어진 제주도는 태풍의 통로다. 바람을 차단하는 장애물이 없어서 특히 겨울철의 북서 계절풍은 제주를 ‘바람의 섬’으로 불리게 했다.

 이 바람을 막기위해 과거에는 방풍림으로 대나무를 심다가 삼나무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생존력 강한 삼나무는 4.3사건시 토벌에 민둥산이된 오름에 심어지면서 제주도의 경관을 많이 바꿔 놓았다.

 2002년 건교부에서는 제주의 삼나무숲이 어우러진 '비자림로'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 했고, 30∼34년생 삼나무가 수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제주 절물 자연휴양림(봉개동)은 주민 및 관광객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제주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양쪽으로 빽빽히 길게 뻗은 삼나무 길을 운전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삼나무 꽃가루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제주에서 삼나무는 제주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방풍수, 땅의 경계 역할을 하는 경계수, 거기에 휴양 및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제공하는 관광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겨울의 과일, 귤을 사람들이 많이 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멀리 땅의 경계를 지어주는 삼나무길이 보이는데 이런 곳이 많다. 가까이에서 보면 나무가 꽤 크다.
저작권자 © 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