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심고 가꿔

 결혼하고 몇 달 안 되었을 때다. 근처 볼일도 있고 해 남편이랑 시댁에 잠깐 들렀는데, 아버님이 온 김에 화분하나 옥상에 좀 올리자고 하셨다. 당연히 “네 아버님” 하고 즐겁게 대답을 하고는 마당에 조그마한 화분들 중 어느 것인가 하고 찾아보고 있었다.

 때마침 아버님이 저쪽 창고에서 목장갑 몇 개를 건네시면서 “이 녀석인데…’”하시며 가리키시는데, 키가 2.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향나무가 서 있게 아닌가. 마당에 두니 볕을 잘 못받아 옥상에 올려야 된다고 하신다. 너무 크고 무거워 계단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버님은 빨랫줄로 화분을 팽팽히 이리저리 수십번 묶으시고는, 어디서 가지고 오셨는지 도르래를 옥상난간에 박으신다. 초등학교 이후로 도르래는 처음 봤다. 도르래를 단단히 박으시고는 화분과 연결돼있는 빨랫줄을 연결해 옥상으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셨다.

 아버님이 1층에서 “당겨!”하고 지시하시면 옥상에서 어머님과 나, 그리고 남편은 구령에 맞춰 영차영차 향나무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 놈의 향나무가 어찌나 무거운지 세 명이 끌어당겨도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두 시간이상 끙끙거리며 올리는 동안 도르래가 부서지고, 빨랫줄도 콘크리트 난간에 조금씩 닳아 끊어질듯말듯 하다. 일머리 없는 나는 구령도 잘 못 맞춰 줄을 당기는 건지 줄에 매달려있는 건지 구분도 안 간다. 어머님도 힘드신 듯 땀이 비오듯하고 남편도 숨이 가빠 보인다.

 “우리 신랑 이러다 허리 다치는 거 아니야…” 철없이 시부모님보다 남편걱정이 더 된다. 그래도 아버님의 구령은 계속됐다.

 마침내 향나무는 옥상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힘은 들었지만 험한 산 정상에 오른 것 마냥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게 향나무에 물을 주고 내려가려는데, 아버님 한마디 하신다.

“나무가 많이 컸네. 화분 좀 갈아줘야 겠다”

 이번에는 김장김치를 묻기도 하는, 속이 깊고 큰 빨간색 고무통을 화분삼아 옮겨 심으시겠다고 하셨다. 고무통 밑을 화분밑처럼 작게 구멍을 내고, 작은 철망을 까니 제법 화분 같았다.

아버님의 일사불란한 지시에 따라 마당의 흙을 퍼다가 옥상으로 날라 검은 비료를 적당이 섞었다. 향나무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새 화분에 옮기고, 비료 섞인 흙을 골고루 넣어 화분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

“휴…, 이제 마무리됐겠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화분에 물을 주시던 아버님 또 한마디 하신다.

“화분에 물이 안빠지네…, 며느라, 화분흙을 갈아줘야 될 것 같은데 니 생각 은 어떻노?”

 나는 삐질 땀을 훔치고는 애써 웃으며 “당연히 바꿔줘야죠”하고 대답 할 수밖에. 아버님은 지치지도 않으시는지 이번에는 망이 촘촘한 소쿠리와 마대자루, 삽을 챙기시고는 손짓을 하신다. 남편이랑 얼른 쫓아가니 승용차 시동을 걸고 태우시는 게 아닌가.

 어느새 우리의 작업반경은 마을인근 야산으로까지 넓어져 있었다. ‘마사토에 심어야 물이 잘빠지고 좋다아니가…’아버님은 주위 흙 중 마사토로 보이는 흙 골라 채에 치라고 하셨다. 남편이 삽으로 흙을 퍼 올리고, 나는 채를 잡고 흔들어 걸러진 굵은 흙만을 마대자루에 담았다.

 이 작업도 두 시간 가까이 한 것 같다. 흙먼지 먹으면서 나는 ‘나무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으시나, 그냥 팔면 돈 되고 더 좋을 것 같은데…노가다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눈치 빠른 남편이 괜시리 미안했는지 살짝살짝 웃어 보인다.

 마대자루 몇 개를 채워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제법 능숙하게 비료를 섞어 옮겨 심었다. 향나무도 오늘 무척 시달렸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웃음도 났다. 다 심고 물을 줘보니 아버님 말씀대로 확실히 시원하게 물이 잘빠졌다.

 어느덧 해가 지려하고 있었다. 아버님 이마의 깊은 주름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흐른다. 

 “며느라, 힘들었지, 내가 왜이리 정성을 쏟는지 아나, 이 나무가 태진이 태어나던 해에 심은 나무 아이가 ”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남편이 태어나던 해에 심은 의미 있는 나무여서, 아들 키우는 마음으로 30년 넘게 정성들여온 나무라고 하신다.

 워낙에 꼼꼼하시고 잔정이 많으신 줄은 알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버님 사랑에 가슴이 찡해졌다. 또 아버님은 “임업직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지. 어떤 나무든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만 심고 가꾸면 다 잘 크게 되있고, 나랏일도 우리 집안일 같이만 여기면 다 잘 된다 아이가.’”하시며 임업직공무원인 내게 특별히 한마디 더 해주신다.

 아버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니 힘들다고 불평한 내가 참 부끄러워졌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우리도 작은 나무 한그루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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