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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커피소리, 커피사랑 이야기(11)
한은수 한림성심대학 관광영어학과 교수
2010년 09월 18일 (토) 01:33:42 참뉴스 webmaster@chamnews.net

◇커피 한 잔속의 아프리카(2)

카렌 블릭센 박물관

   
▲ 카렌 블릭센 박물관 정면모습이다. 오른편에 있는 커피나무에 초록 빛 커피열매가 탐스럽게 열렸다.
약 45분간 경비행기를 탄 후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동경식당에서 대빵야끼로 점심식사 후 시내 관광을 시작한다.

여러 지역에서 도로공사가 진행중이다. 중국이 발빠르게 자원외교에 나섰다. 중국인 감독관을 두는 것을 조건으로 중국이 도로 공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케냐인들에게 2가지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폴레 폴레 정신(폴레폴레은디요음웬도, 하라카하라카하이나바라카-서두르면 복이 달아나고, 서서히 해도 일은 된다).

또 하나는 하쿠나마타타(걱정하지마. 다 잘될거야) 정신이다. 케냐인들의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과 낙천성이 투자국의 조바심을 키운 일례이다. 중국인 감독관 덕분에 도로 공사가 그나마 이정도로 진척됐다며 가이드가 너스레를 떠는 것을 보면 그들의 느긋함을 짐작할 만하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카렌 블릭센 박물관으로 향했다. 영화 ‘Out of Africa’를 보고 더욱 아프리카를 동경하게 해주었던 카렌 블릭센(1885~1962)이 거주하던 집이다.

카렌블릭센은 1913년 스웨덴인 친척인 브로르 본 블릭센피네케 남작과 약혼한 후 함께 당시 영국령이었던 케냐로 이주해서 결혼해 나이로비 근교에서 커피 농장을 시작했다. 전쟁, 남편을 통한 성병, 사랑, 이혼, 화재, 커피농장의 파산, 영국의 모험가인 연인 데니스 핀치헤튼과의 사별 등을 겪은 뒤 카렌은 1931년 고향인 덴마크로 돌아가 평생을 그곳에서 보내며, 다시는 아프리카 땅을 밟지 않았다.

카렌은 노벨상후보에 두 차례나 지명되었던 덴마크 여류작가이며 ‘Out of Africa’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히게 해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약 17년간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겪은 모험, 사랑과 깨달음을 절제된 서정적 필치로 묘사하여 당시 유럽에서 불었던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의 불을 더욱 지폈다.

1985년 시드니 폴락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한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하여 원숙한 연기와 아프리카 초원의 영상이 돋보였던 영화다.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케냐 고원지대의 풍경이 아름답게 포착되어 케냐의 야생자연을 전세계에 알려준 영화이기도 하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한그루 커피나무에 초록빛 열매들이 촘촘히 탐스럽게 달려있다. 붉은 빛 열매로 가지가 휘어지는 시기에 왔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카렌이 살던 음보가니 하우스가 아름다운 숲속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저택 저 멀리 숲속에는 당시 짐을 실어나르던 수레가 소품처럼 자리잡고 있다.

벤치에 앉아 저택 정면에 있는 커피나무를 보고 있으려니 데니스가 축음기를 가져와 틀었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가 아련히 흐르는 듯하다. 그 둘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가 실룩인다.

영화 장면에서와는 달리 저택 정면이 아니라 옆에 있는 현관을 통해 박물관으로 들어선다. 거실, 식당, 사무실, 서재, 욕실 그리고 두 개의 침실이 전부다. 각각의 침실에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입었던 의상과 모자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외의 가구는 카렌이 쓰던 옛 모습 그대로 관람인을 맞이하고 있다.

서재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책들은 영화 촬영 후 기증되어 비치된 것이고, 다 낡은 타자기와 축음기, 뻐꾸기 시계와 두 개의 호롱불 등 나머지 가구는 카렌이 사용했던 물품들이다. 빨강색 등불은 지금 기분이 괜찮으니 들어와도 좋다는 뜻이고 파랑색 등불은 지금 기분이 우울하니 그대로 돌아가라는 신호로 밖에 내걸었다고 한다. 연인에게 등불로 자신의 분위기를 나타냈다니 참으로 낭만적인 여인이다.

부엌에는 어린시절 장터에서 본적이 있는 후추나 고추를 갈 때 쓰는 도구와 같은 것이 있다. 고정 그라인더이다. 그것으로 커피를 갈아서 마셨으리라.

무언가 미진한 것이 있어 출구로 나오면서 건물 한구석에 있는 기념품 상점에 들려 에스프레소 커피를 샀다. 판매원에게 커피를 들고 있는 모습을 사진 촬영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디카로 찍은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니 활짝 웃는다.

커피 농장이 현재는 카렌 골프장이 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커피를 들고 드넓은 후원에 앉아 영화 속에서 하이얀 커피꽃이 핀 카렌의 커피농장을 떠올린다. 곧 초록빛 커피열매가 잔뜩 달린 가지가 빗속에서 흔들리고, 붉게 익은 커피체리를 수확하느라 원주민 키꾸유부족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붉은 커피 열매는 밀링기계로 옮겨져 과육이 벗겨지고 파치먼트가 제거된 뒤 물에 씼겨져, 넓은 널빤지위에 펼쳐져서 햇빛을 받으며 이리저리 뒤척여져 건조된다. 두 손으로 건조된 커피콩을 비비자 연녹색 빛의 속살이 드러난다. 신비롭다.

그러나 오랜만에 최고의 수확을 주신 신은 한밤중의 불로 모든 신비를 거두었다. 햇살이 뜨겁다. 불의 열기가 전해진다. 카렌의 모험과 열정 그리고 좌절이 함께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생명력과 그곳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숨결도 생생히 느껴진다. 심호흡과 함께 눈을 떴다.

박물관입구에서는 일행들이 부산하고 시끄럽다. 일행 중 화백 한 분이 그 동안 스케치한 200여장의 그림을 박물관 입구에서 전시하기 위하여 준비 중이다. 일행들이 전시준비를 도우면서 의견이 분분하다. 제목은 ‘아프리카를 가다’. 눈 깜빡 할 사이에 그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케치 모델이 된 본인에게 서명까지 받기도 했다.

전시를 즐기는 이에겐 스치는 즐거움이지만 준비하는 이에겐 오랜 고통의 산물이다. 최 화백님이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여 스케치하느라 몰두했을 때 그를 스쳐지나간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열중할 때 또 다른 어떤 것을 놓친다. 그것이 하찮은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야생고기BBQ인 야마초마로 저녁식사 후 사파리 켓츠 쇼를 관람하면서 커피 한잔을 든다. 케냐의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케냐를 사랑했던 한 여인의 삶을 넘기면서, 문득 그저 커피가 좋아서 오직 커피 소비에만 집중했던 나 자신이 머슥해진다.

한국을 출발할 때 기내에서 읽었던 기사가 생각난다. 미국 롤린스대학 쿠페츠 교수는 한국인은 독특한 커피문화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에게 가정은 가족이 머무는 곳이고 직장은 생계를 위한 공간이다’라고 전제한 후 ‘커피전문점은 집과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방시켜주는 제 3의 장소’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의 이러한 커피산업 모델이 아시아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 역수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내다본다.

커피가 탄생된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 커피문화가 전세계를 주도할 수 있을 그 날을 그려본다.

(글=한은수 한림성심대학 관광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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