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과 천지

야간열차를 타고 이도백화를 가기 위해 통화역에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중국의 제기를 찼다.

중국의 제기차기는 한국과는 다르다. 여러 명이 둥굴게 원을 그려 상대방에게 제기를 날리면 받는 사람이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면서 다시 상대방에게 제기를 차 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제기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도백화에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중국의 열차는 침대칸과 일반실의 가격차이가 심하게 난다. 중국의 열차는 한국의 비둘기호로 보면 된다.  비둘기호를 알고 있는 세대는 아마도 30대 후반이겠지만 젊은 세대도 대충은 알고 있으리라 본다.

물론 중국에도 한국의 새마을호와 같은 좋은 열차도 있지만 서민들이 이용하는 열차는 딱딱한 의자와 북적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소리에 차내가 혼란스럽다.

우리 일행은 침대칸에 몸을 실었다. 그날따라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한국 중학교에서 자매결연을 맺은 현지 중학교를 방문한 듯 하다. 중국과 한국간의 학교간 자매결연은 대학 뿐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중학생들과 우리 일행은 밤을 달려 이도백화에 들어섰다. 이도백화는 백두산을 가는 출발점이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른다.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는 민족의 영기가 서려있는 백두산을 향해 몸을 옮겼다. 백두산은 그 높이가 2,700여미터에 이른다. 우리 민족의 영지, 그 백두산이 눈 앞에 비쳐졌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백두산에 첫 발을 내딪었다.

철조망이 가로막혀 가지 못하는 백두산을 중국을 거쳐 들어섰다.  우리 민족의 땅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외화를 써야만 갈 수 있는 현실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백두산은 인간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버스를 타고 백두산 입구에 들어섰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인해 백두산이 울고 있었다. 백두산은 인간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과 사람들이 버리고간 쓰레기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천지까지 차량이 운행됐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관광차량들에 산은 안정을 취하지 못했다. 그래도 천지를 볼 수 있다는 희망에 짚차에 몸을 싣고 천지를 향했다.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질주하는 짚차는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고 있어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미리 안정제를 취해야 할 것 같다.

천지 밑에까지 도착한 후 불과 2~3분여만에 천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천지가 눈에 가득찼다. 영원히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천지가 내 발아래 그 온화한 자태를 드러냈다.
저 멀리 보이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도 볼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을 나누는 경계선. 또 한 번 아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우리 일행은 짧은 시간동안 천지의 모든 것을 담아가기 위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30분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짚차가 기다려주는 시간이 30분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천지에서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기엔 너무 높은 산이라 감히 걸어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내려다 본 천지는 한마디로 황홀했다. 달려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깊은 곳에서 솟구쳤지만 내려가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커 보였다.

다행히 천지 연못에 손을 담을 수 있는 길이 따로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우리 일행의 천지 나들이는 하늘이 도운 것 같았다. 입산할 때만 해도 백두산 정상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는데 정상에 올라서면서 먹구름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백두산 제일 봉우리는 오르지 못했지만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가슴을 억누룰 수 없었다.

넋을 놓고 바라본 천지를 뒤로 하고 장백폭포를 향해 몸을 옮겼다. 웅장한 폭포가 모습을 드러내고 한 달음에 폭포수 아래까지 왔다.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그 소리가 천둥같았다.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쳐 뿜어내는 물보라는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꿈틀댔다. 용의 꿈틀거림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천지연못에 손을 담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산행을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하나 밟았다. 숨은 가빠지고 다리는 후들거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천지에 손을 담구고 곧 태어날 아기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기원해야지 하는 생각에 힘든 시간을 참고 걸었다.

1시간 가량 올라온 것 같았다. 드디어 천지다. 아무런 생각도,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천지와는 또다른 감동으로 자리잡았다.

연못 가장자리에 앉아 두 손을 담았다.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격정이 온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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